[완주 여행] 종남산 송광사

Posted by 누리나래
2013. 3. 4. 21:01 여행

종남산 송광사 일주문

종남산 송광사는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읍 대흥리 종남산(終南山)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전남 순천 송광사와는 한자이름까지 똑같아 순천 송광사, 완주 송광사라고 지명을 앞에 붙여 부르고 있습니다.

순천 송광사가 승보종찰로 우리나라 불교의 3보사찰중의 하나라고 할수 있다면 완주 송광사는 나라의 어려운 시기에 의승군들이 머물렀던 호국사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완주 송광사의 원래 이름은  백련사(白蓮寺)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신라시대인 867년(경문왕 7)에 창건하였다고 하는데 신라 진평왕 5년인 583년 도의선사가 절터를 찾다가 영천수를 발견하고 터를 잡았다고 합니다. 그 후 경문왕 7년(867)에 구산선문 중 도의국사의 가지산파 제3조인 보조국사 체징(804-880)에 의해서 중창되었다가 한동안 폐사가 되어 주춧돌만 남아 있던 것을 고려 보조국사가 이곳을 지나다 성지임을 알고 표시를 해두었고, 수 백 년이 지난 뒤 조선 광해군 15년(1622:임술)에 웅호, 숭명, 운정, 득신, 홍신 등 보조국사 제자들이 덕림스님을 중창주로 모시고 복원, 중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전의 송광사는 일주문이 현재의 위치보다 3km남쪽 밖에 있었을 정도로 규모가 큰 사찰입니다.

1814년(순조14년) 조계교가 있던 곳에 옮겼다가 1944년 해방되기 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800동의 당우와 600승려들 있을 정도로 그 규모가 대단했었다고 합니다.

 조선조에는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무사히 본국으로 돌아올 것을 기원하고 국난으로 돌아가신 일체 영가들의 왕생극락을 발원했던 곳이기도 하며 병자호란 때에 전주사고를 지키기 위하여 승군 700명이 머무르는 등 민족의 호국도량이기도 합니다.



완주 송광사

▲ 일주문(一柱門)을 들어서면 금강문(金剛門)· 천왕문(天王門)· 종루(鐘樓)가 차례로 나오고, 종루 옆의 대웅전을 지나면 뒤쪽에 나한전을 비롯한 건물들이 있습니다.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는 일자(一字)로 배치되어 있고, 공간 배치가 자연스러워 한국의 전통적인 정원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일주문 옆에는 전통 찻집이 있고 웃는 얼굴로 합장한 모습의 목장승이 반겨줍니다.

완주 송광사 1

▲ 금강문에서 천왕문 포대화상 대웅전까지 일자로 배치가 되어 있습니다.

   현재는 포대화상은 오른쪽으로 이전했습니다


완주 송광사 사천왕상완주 송광사 사천왕상

▲ 천왕문에는 사천왕상이 양쪽에 자리잡아 송광사를 수호하고 있습니다


완주 송광사 포대화상

▲ 천왕문을 나서면 바로 정면에 포대화상을 만날수 있습니다.  (포대화상은 오른쪽으로 옮겼습니다)

포대화상은 커다란 포대를 메고 다니면서 어려운 사람이나 필요한 사람들에게 물건을 나누어 준다고 합니다.

포대안에는 없는것이 없고 물건이 떨어지지를 않는다고 합니다.

불교의 산타크로스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것 같습니다.

오른쪽 길가에는 오래된 당간지주가 서있습니다.

송광사 대웅전

▲ 대웅전은 보물 1274호로 조선 인조 14년(1636)에 벽암국사가 짓고, 철종 8년(1857)에 제봉선사가 한 번의 공사를 더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석가여래부처님을 주불로 모시고 우측에 아미타부처님, 좌측에 약사 부처님을 각각 소조(흙으로 빚어)로 모셨습니다. 

전각안에 모셔진 부처님으로서는 규모가 매우 크편에 속합니다.

대웅전 현판은 선조의 8번째 아들이며 광해군의 동생인 의창군이 쓴 것으로 인조 14년(1636)에 세운 송광사 개창비의 글도 의창군이 썼다고 합니다.


1993년 본존불에서는 세 분 부처님의 조성기가 발견되었는데 <조성기>에 의하면 숭정 14년(인조 5년, 1641) 6월 29일 임금과 왕비의 만수무강을 빌고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있던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조속한 환국을 기원하면서 만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웅전 삼존불 사이 앞 쪽에 있는 나무로 만든 목조삼전패가 있다. 그 중 하나는 높이 2.28m로 앞면에 임금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글씨가 있고, 뒷면에는 조선 16대 왕인 인조 때 조성되었다는 제작연대가 밝혀져 있습니다.

 다른 2점은 높이가 2.08m로 같으며, 뒷면에 정조 16년(1792)에 수리하였음을 검은 글씨로 적혀 있으며, 왕비와 세자임을 기록한 패라고 합니다.


송광사 대웅전에 그려진 비천상도 송광사 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웅전 앞의 큰 붉은 기둥은 당간으로 괘불을 걸어놓고 야단법석을 펼칠때 사용합니다.


송광사 십자 종루

▲ 송광사 종루. 보물 1244호로 송광사십자각, 송광사 십자종루로도 불립니다.

대웅전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1857년(철종 8) 대웅전을 중건할 때 제봉선사(霽峰禪師)에 의하여 대웅전과 함께 중건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건물 내에는 종과 북을 달아놓았는데 범종의 주조시기는 1716년(숙종 42)이므로 건물은 종의 주조시기보다 약 140년 후에 세워진 것이라고 합니다.

 범종각은 2개의 팔작지붕이 교차된 열십자(十)형으로 되어 있어 한국의 목조건축 평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형태로 평면형 형태를 따라 십자각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십자 종루는 우리나라에서는 송광사 종루가 유일한 건물입니다.

중앙칸에 범종을 동·남·서 3칸에 목어, 운판, 법고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종루의 지붕은 중앙에서 모아지는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고 마루 밑의 기둥들은 모두 원형기둥을 세워놓았다.

이 기둥들은 모두 원형이나 각재로 굵기도 모두 달라 나무의 형태를 그대로 살려 만들어 놓았습니다.


송광사

▲ 대웅전 뒷편의 나한전과 요사의 모습입니다.

 마치 한국의 전통 정원에 들어온것 같은 편안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송광사 미륵불송광사 석탑

▲ 나한전 뒷편으로는 석탑과 미륵보살상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송광사 수각

▲ 물을 마실 수 있는 수각에도 바가지를 걸어 놓을수 있는 목 장승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밖에 지장전도 꽤 유명한 전각인데 마침 재를 지내고 있어 촬영하지 못했습니다.

최근에는 템플스테이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송광사는 호국도량답게 나라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땀을 흘린다고 합니다.


완주 송광사 연꽃

▲ 주차장 옆에는 백련정이라는 정자가 세워져 있고 수만평에 이르는 연꽃밭이 조성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습니다


사진들은 모두 지난 2012년 9월에 촬영한 사진들입니다.

규모가 큰 사찰이고 시간에 쫒겨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조만간 인근의 위봉사를 다녀오면서 다시 들러야 겠습니다.